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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베토벤의 유서와 묘지

mecena 2011. 6. 1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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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토벤아저씨의 생애는
그의 <운명교향곡>만큼이나 운명적으로 비참하고 성격 또한 괴팍하였던 것을
그가 쓴 유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귓병을 앓게 되면서 완치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32세(1802년)의 베토벤은 잠시 휴양차 머물고 있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그 해 10월에 두 동생 Karl and Johann에게 유서를 썼는데
이 유서는 베토벤이 죽은 후에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Beethovenhaus in Heiligenstadt...
The Beethovenhasu at Heiligenstadt
베토벤이 머물면서 1802년에 유서를 썼던 집
 
 
우리의 삶이 언제 마감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저에게는 유서라는 것은 아직도 왠지 망설여지고 쓰고 싶지 않은 것으로
죽음이 임박해질 때서야 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베토벤이 32세의 젊은 나이에 유서를 썼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질병이 심각한 것이었나 봅니다.
그는 유서에서 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부인하며 귓병에 대한 고통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신체 중에서 어느 기관이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할까 만은
특히 음악가에게 귀는 가장 소중한 기관일 것입니다. 
그동안 베토벤하면 청력을 잃었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있었지
그가 청력을 상실하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가를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그의 유서를 보면서 청각장애가 얼마나 심각한 좌절을 주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6년 동안 내가 어쩔 수 없는 병에 시달려 왔음을 생각해 다오. 그병은 무책임한 의사들에
의해 악화되었고 난 회복될 희망에 내내 세월을 허비하다가 결국엔 오래도록 앓아야만 할 거라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이 병은 완치가 되려면 아주 오래 걸릴 것이고 어쩌면 완치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비록 불같고 적극적이고 사회의 여러 가지 영향을 잘 받는 성격까지 타고 태어났지만 난 곧 사회에서
스스로 고립해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때때로 이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할 때마다
내 귀가 나쁘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경험하곤 쓰라린 마음으로 물러 서버리고 만다.
 하지만 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해요, 소리 질러요. 난 귀가 먹었어요.”라고 말할 수가 없다.
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완벽해야 할 그런 감각이 병약하다는 사실을 내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나의 청각은 한때는 극도로 완벽해서 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
.
.
 
비록 때때로 난 교제를 나누고 싶은 욕구에 굴복해서 내 마음에 반(反)하는 행동을 하곤 했지만.
그러나 내 곁에 서 있는 사람이 멀리서 들려 오는 플루트 소리를 듣고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목동이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나는 역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때의
그 굴욕감이란! 그런 일들은 나를 거의 절망으로 빠뜨려 버린다. 그런 일들이 조금만 더 일어났으면
난 자살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를 지켜준 것은 오직 나의 예술이었다.
아, 난 내 안에 느끼는 것을 모두 꺼내놓을 때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
it was only my art that held me back.
 Ah, it seemed to me impossible to leave the world until I had brought forth all that I felt was within me.
(베토벤의 유서에서)
 
 
 
 
"음악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지 않게
비엔나의 중앙묘지에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묘가 있었습니다.
 
 Zentralfriedhof(Central Cemetary) in Vienna

 

 

 

정문에서 약 200 미터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모짜르트의 기념비, 브람스,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그리고 베토벤의 묘가 한곳에 있어서 특별명예구역(Ehrengräber)이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크고 넓은 곳이라 함께 모여 있지 않으면
일일이 찾아 다니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메트로놈(Metronome)모양의 베토벤의 묘입니다.
금빛 하프가 새겨져 있는 것이 화려하면서도 단아하게 보입니다.
 
 

“존경하려니 괴팍하고, 사랑하려니 돈이 없고, 무시하려니 위대하다.” 라는 말은

당시 비엔나 사람들의 베토벤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괴팍한 성격과 청각을 잃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더욱 빛났던 그의 예술의 혼...

 

 

그의 묘지를 보니 그가 임종할 때

“박수를 치게, 친구들이여, 희극은 끝났다네.”

(Plaudite, amici, comedia finita est.)라고 했다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쓰고난 후 25년이나 더 살고 1827년 3월 26일에

그의 삶을 마감합니다.

번개와 벼락이 치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치켜들고 허공을 노려보다가 이 한마디 말을 하였다고 전하여집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그의 삶이 희극이었을까요?

 

 

Funérailles de Beethoven - Franz Stober

Beethoven's funeral, the painting by Frnaz Stober, 1827

(image from web)

 

 

베토벤의 사망 후 3일 째 되던 날 장례식이 치뤄지고 비엔나 인근의
뵈링 묘지( Währing cemetery)에 묻혔는데
슈베르트 등에 의해 관이 호송될 때 장지까지
2만명이 넘는 조객이 횃불을 들고 행렬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비엔나 인구가 29만명일 때라고 하니 무척 성대한 장례식이었나 봅니다.
 
처음에는 뵈링묘지에 묻혔다가 이 중앙묘지가 생기면서
1888년 9월에 이곳으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묘지 오른쪽으로 모짜르트의 기념비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슈베르트의 묘지와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에는 슈베르트에게 월계관을 씌어주고 있는
음악의 신 뮤즈가 새겨져 있습니다.
 
베토벤을 너무나 좋아했던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그래서인지 베토벤이 57세로 죽은 다음 해에 31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었고
 베토벤과 함께 묻히기를 원하여서 베토벤과 함께 뵈링거 묘지에 묻혔다가
베토벤의 묘가 이곳으로 이장되면서 함께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그 짦은 생애동안에도 그토록 아름다운 곡들을 작곡하여
음악의 신 뮤즈로부터 월계관을 받기에 합당하였던 슈베르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모짜르트의 기념비
레퀴엠의 악보와 하프를 안고 있는 여인의 청동상은
 아내 콘스탄체의 모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묘지(유골)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모짜르트에게 배우기 위해 비엔나에 왔을 때는
모짜르트는 이미 타계하여서 베토벤은 하이든에게서 배웠다고 합니다.
(모짜르트에 관한 포스팅 참조)


 

왈츠의 황제 요한 스트라우스와 그의 세번째 아내 아델의 묘

 

 

 

 “비엔나로 오시오. 음악가가 살기에는 좋은 곳이오.” 라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권유에 따라
1862년 거처를 비엔나로 옮긴 브람스는 죽을 때까지 35년간 요한 스트라우스와 두터운 우정을 나누다가
지금은 둘이서 나란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 (1833-1897)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을 연모하여 일생 결혼도 하지 않았던 브람스의 묘석에
왠 나체의 여인이 뒤에 있는지...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분홍색 꽃이 시들어 있습니다.
장미 한송이라도 사다가 놓아줄 것을...
 

 

 

아놀드 숀버그의 묘는 좀 떨어져 있어서 찾지 못하고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스트라우스, 브람스, 숀버그, 등
악성들이 모여있는 비엔나의 중앙묘역(Central Cemetary)의 특별명예구역..
  
악성(樂聖)들은 죽어서도 이렇게 한자리에 있으니
그들이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연주를 하고 있을까? 
지금도 작곡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 시대의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을까?
 
아마도 이 시대의 현대음악...
도무지 못마땅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곳에는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의 역대 대통령들의 묘가

돌로 만든 벤치처럼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묘지 내에 있는 성당

 

 

제 4대 대통령 Dr. Karl Renner (재임기간: 1945-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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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대 대통령(재임기간:1951-1957) Dr. H. C. Theodor Korner (1873-1957)

 

 

 

6대 대통령(재임기간:1957-1965) Adolf Schärf (1890-1965)

 

 

제 7대 대통령 Dr. Franz Jonas (재임기간: 1965-1974)

 

제 8대 대통령 Dr. Rudolf Kirchschlager (재임기간: 1974-1986)

 

제 9대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 대통령 (재임기간 1986-1992)

 

 

제 10대 대통령 Dr. Thomas Klestil (재임기간 1992-2004)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위의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Dr.(PhD)인 것이 특이하고 부러웠습니다.

 

 

 

 

 

죽은 자들의 땅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만난 황혼은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다음 날이면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 II Adagio

Conductor : Leonard Bernstein.
Pianist : Krystian Zimerman
Orchestra : Wiener Philharmoniker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cello91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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